7살...'도'
유치원에 있던 피아노를 장난삼아 쳐봤다.
눈치는 있었던지 다행히 가운데있는 '도' 건반을 찾았다.
엄지부터 차례로...새끼손가락이 '솔'을 눌렀다.
어떤 피아노 회사의 광고처럼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였다.
그리고...그 다섯개 건반 말고 다른 건반은 장식인줄 알았다.
10살...'레'
친구들이 다 다닌다길래 나도 피아노학원에 갔다.
피아노에 패달이 달린걸 그때 처음 인식했다.ㅡ.ㅡ;
바이엘을 배우면서 장식용 건반들도 소리를 냈다.
여러가지 음이 한꺼번에 울린다...아름답다...
그리고...패달은 밟으면 혼난다는걸 알았다.
14살...'미'
중학생이다...공부때문에 피아노 학원은 그만뒀다.
이제 체르니,소나티네 같은건 안친다.
어렵기만하고 실속은없다. 가요나 팝송을 쳐야 인기있다는걸 알았다.
음악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건 정말 어렵다는걸 알았다.
18살...'파'
피아노는 들고 다닐수 없다.기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타 살 돈이 없다는걸 알고 포기했다.
이젠 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머리속에...아니 가슴속에 악보가 새겨지는것 같은 기분...
그리고...화성학책을 샀다.
19살...'솔'
고3이다. 부모님께 음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음대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신다.
결국 단식의 승리로 레슨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
같이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다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왔다.
그리고...운전기사가 문열어주는 장면을 그때 처음 봤다.
20살...'라'
나는 대학생이다. 공대생이다...
손목의 신경이 끊겼다. 새끼 손가락과 그옆 손가락이 같이 움직인다.
난 네손가락으로 피아노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쇼팽의 에뛰드는 내가 네손가락으로 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리고...그 곡은 거의 모든 학교의 실기곡이었다.
21살...'시'
2학년이 끝나고, 네번의 학기중에 두번이 학사경고였다.
당연하다. 강의실에 있는 시간보다 당구장과 술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이렇게 지내면 안된다고 느꼈다.
남자라서 다행이다...군대가면 된다.
그리고...그렇게 도망쳐온 군대는 생각보다 힘들었다.ㅡㅡ;
그리고 지금...
먼지가 두껍게 쌓인 피아노를 오랜만에 쳐다본다.
도레미파솔 다섯 건반에 손가락 다섯개를 가만히 올려놓고
한꺼번에 눌러보았다.
도,미,솔 세음이 만들어낸 명랑한 화음에.
'레'와'파'가 섞여 둔탁한 울림을 낸다.
길진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무게 같은 소리다.
하지만 종지 되지 않는 여운...
'솔'뒤에 '라' 그 뒤에 '시' 그리고 장식이 아닌 나머지 건반들.
아직 눌러 보아야할 건반이 많이 있기에...
두껍게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고 있는 것이겠지...
# by 글쎄 | 2005/02/12 0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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